VR기기 활용…미손상 뇌세포 이용 기능 회복

2023.01.16

뇌 손상 후 시야장애

시대의 패러다임이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폭풍처럼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보수적이던 국내 보건의료계도 변화의 중심에 위치해 있습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같던 디지털치료제도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디지털치료제는 무엇일까요. 작동 원리는 무엇이며, 어떤 질병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상담포인트는 무엇인지, 아직은 막막합니다. 이에 ‘참약사 디지털헬스케어 스터디 DOPA’를 통해 약사의 새로운 영역을 함께 공부하고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뇌 손상 후 시야장애란 다른 질환에 비해 생소한 질병이다. 현재까지 개발된 치료제는 없고, 발생하게 되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기 때문에 그만큼 치료가 간절한 질환이다. 이와 관련된 디지털치료제가 국내에서 개발돼 현재 임상시험 중이라 한다.

뇌 손상 후 시야장애란 무엇인지, 정상적인 시야경로와 기존 치료방법을 살펴보고 이와 관련된 디지털치료제에 대해 알아보자.

뇌 손상 후 시야장애란?
뇌 손상 후 시야장애란 눈과 시신경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시각중추의 손상으로 시야 내에서 볼 수 없는 영역이 부분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시야장애 영역은 그 손상 부위에 따라 위치나 범위가 다를 수 있다. 뇌 손상 환자 중 약 20%에게 시야장애가 나타난다고 하며 국내 발생 환자 수는 매년 약 2만명이라고 한다.

시각 경로
우리의 시야는 뇌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정상적인 시각 경로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아보자.

눈은 발생학적으로 뇌신경의 일부에서 발생한 것이고 해부학적·기능적으로는 뇌신경으로 작용한다. 즉 우리가 본다고 느끼는 것은 실제로는 뇌가 인지하는 것이다.

빛이 시세포를 자극하면 신경절세포를 통해 뇌의 시각 피질로 전달돼 우리는 본다고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뇌의 손상으로 시각 피질에 병변이 생길 경우 이와 연관된 부위에서 시야장애가 생길 수 있다.

일반적인 시각 기능 평가
대표적으로 알려진 시각 기능 평가는 ‘험프리 시야검사’와 ‘NEI VFQ-25′(National Eye Institute Visual Function Questionnaire)를 통해 이뤄진다.

험프리 시야검사는 망막의 각 부분마다 빛에 대한 민감도가 다른 것을 이용하여 그 정도를 숫자(dB)와 명암(Gray scale)으로 표현한다. 숫자가 높을수록, 밝게 표현할수록 해당 부위의 민감도가 높아 약한 시야자극도 잘 인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험프리 검사를 통해 손상된 시야영역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NEI VFQ-25는 미국 국립안연구센터에서 제작한 시각기능 설문지로, 약 25개의 질문을 통한 대답을 토대로 문항 별 점수를 산정하여 시각 기능을 판별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작업 수행능력이나 증상 뿐 아니라 삶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기존 치료법
뇌손상으로 인한 시야장애는 눈의 이상이 아닌 뇌의 손상이 그 원인으로, 손상된 뇌를 재생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현재까지 알려진 치료법은 부재하다. 미국 뇌졸중 학회 가이드라인에도 뚜렷한 치료방법은 없었고 제시하는 방법도 유용성이나 효능성이 크지 않은 편이다. 시야 손상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세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Prism glasses는 안경에 프리즘을 접목해 빛의 굴절을 이용한 시야의 부분적인 확장으로 부족한 시야를 약간이나마 보충해준다.

시야 보상 훈련(Compensatory scanning training)은 여러 항목들 사이에서 목표 타겟을 찾도록 훈련하는 방식으로, 반복적인 안구 운동을 통해 남은 시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시력회복 치료(Vision Resoration Training, VRT)는 턱을 고정해 화면의 고정점을 바라보면서 빛의 자극이 화면의 다른 곳에 나타날 때마다 클릭하는 방식으로, 시각 기능을 회복하고 시야를 확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아직까진 효능에 대한 근거는 부족하다.

세 가지 방식 모두 남은 시야능력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손상된 시각능력을 회복시키지는 못한다.

뇌손상 후 시야장애의 디지털치료제 ‘뉴냅비젼’
뉴냅스(Nunaps)에서 개발한 뉴냅비전(Nunap Vision)은 식약처 디지털치료제 가이드라인 확증 임상시험 승인을 받은 한국 최초의 디지털치료제이다(확증 임상시험이란 시판 허가 전 마지막 단계의 임상시험으로, 의약품 개발 시 3상 임상시험과 비슷한 단계이다).

형태는 VR 기기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며 2019년 50억원 규모의 Series A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뉴냅스의 대표는 신경과 의사로 뇌손상 환자들을 상대하며 시야장애 치료의 필요성을 느껴 시지각학습을 연구하다 치료제 개발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뉴냅비전의 핵심 원리(치료원리)
뉴냅비전의 치료원리는 뇌가소성과 맹시이론을 기반으로 한다. 뇌가소성이란 손상된 뇌세포가 하던 역할을 손상되지 않은 뇌세포가 대신하여 기능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재활치료를 통해 기능을 회복하고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뇌세포도 완전히 죽은 게 아니라 부분적으로 손상된 경우라면 반복적인 자극을 가할 경우, 손상되지 않은 뇌세포가 이를 대신하여 기능을 회복하도록 하는 원리이다.

맹시이론은 시야 장애로 보이지 않더라도 그 신호자극은 뇌에 전달되고 있음을 말한다. 예를 들어 왼쪽을 보지 못하는 환자에게 왼쪽으로 무서운 사진을 보여줬을 때, 환자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맥박, 동공 등의 생체반응은 무서움을 나타내는 양상을 보였다는 연구가 이를 설명해준다.

뉴냅비전은 시야의 보이지 않는 영역에 지속적으로 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맹시이론’과 ‘뇌가소성’의 원리에 따라 시야를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시냅스를 만들고 보이지 않던 시야를 개선하도록 한다.

뉴냅비전의 효능·효과(임상시험정보)
뉴냅비전은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2019년부터 2021년까지 1년 7개월간 진행한 임상시험을 살펴보자. 임상시험은 반맹(hemianopsia)환자 80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배정 방식으로, 치료는 하루 30분씩 주 5일간 진행했고 총 12주동안 진행됐다. 암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시야장애 부위에 반복적으로 시각자극을 보내는데, 가로, 세로, 회전 등의 영상을 보내 환자가 판별해 맞추도록 한다.

치료효과는 험프리 시야검사와 NEI VFQ-25 설문지 점수의 변화로 판단했다. 12주간의 사용 후 험프리 시야검사 결과 손상된 부위의 빛에 대한 민감도가 많이 개선됐고 전체 시야의 평균점수도 호전됐다고 한다.

약국에서 취급된다면? 생각해보기
뉴냅비전이 약국에서 취급된다면 약사들의 상담포인트는 무엇이 있을까? 뉴냅비전은 시각기능은 정상적이지만 시각 중추가 손상된 시야장애에 대한 치료제이다. 사용 대상이 제한적인 치료제인 만큼 적합한 대상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또한 치료를 위해선 VR 기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아직까진 보편화되지 않아 사용이 미숙할 수 있고 작동 방식도 게임적 요소가 없어 다른 디지털 치료제들에 비해 단조로운 편이다.

디지털치료제는 환자의 꾸준한 사용이 치료효과에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정확한 사용법 안내와 치료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치료원리인 뇌가소성과 맹시이론에 대한 개념을 함께 설명해 뇌가소성이 이뤄질 때까지 꾸준한 사용의 필요성을 설명해주면 좋을 듯하다. 현존하는 치료약은 없기 때문에 의약품과의 상호작용은 없다.

마무리
뉴냅비전은 현존하는 치료방법이 없는 질병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치료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뉴냅비전에 대해 알아보는 동안 디지털치료제의 가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뇌 손상으로 인한 시야장애 외에도 여러 불치병들에 대한 디지털치료제들이 개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지원 약사. 홀리데이약국, DOPA ETC팀.